2023년 상반기, 어느 날.
지하철에서 유튜브를 보다가 처음 접하게 된 인물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빠떼리 아저씨’라고 불렀다.
카리스마 있는 말투, 날카로운 매크로 분석, 그리고 누구보다 확신에 찬 눈빛.
“2차전지는 미래입니다. 앞으로 10년간은 이 섹터만 보면 됩니다.”
그 말이 화면을 뚫고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부터 지갑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모든 뉴스가 내 편 같았던 시절
그 시절의 2차전지는 가히 민족의 꿈 같았다.
K배터리 3인방 –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
거기에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까지 종목들은 줄줄이 오르고 있었고,
유튜브, 블로그, 주식카페에서는 이렇게들 말했다.
- “이건 반도체보다 더 클 겁니다.”
- “전기차 시대? 결국 배터리 전쟁이에요.”
- “삼전은 늦었고, 이제는 2차전지입니다.”
나는 그 말들이 전부 옳아 보였다.
아니, 옳기를 바랐다.
은행에 묵혀 있던 예적금 4천만 원,
기존 보유하던 주식 일부 청산해서 3천,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통에서 끌어온 3천까지.
총 1억.
나는 그 돈을 ‘미래’라는 이름의 종목에 넣었다.
🛒 내가 산 종목들 – 꿈의 재료들
내가 매수한 건 이랬다.
- 에코프로: 250만 원 돌파한 후 눌림목이라며 들어감
- 엘앤에프: 양극재 핵심 종목, 외국계 기관 매수 보고 따라탐
- 포스코퓨처엠: 리튬 테마+포스코 신성장 부문이라며 대거 진입
- 천보, 솔루스첨단소재 등 화학소재주에도 분산투자
- 소형 중소형 부품주도 테마 따라 조금씩 담음
비중은 나름 분산했지만, 결국 다 2차전지였다.
그땐 몰랐다. 이건 분산이 아니라 ‘몰빵의 다른 버전’이라는 걸.
🔥 꿈은 불타오르고, 잔고도 올라가던 날들
처음엔 정말 환상적이었다.
에코프로가 연일 상한가를 치고, 관련주들까지 따라 올랐다.
단 2주 만에 내 계좌는 1억 → 1억 2,300만 원으로 불어났다.
지금까지 수년 간 투자했던 모든 수익보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계좌가 자랐다.
그때는 진심으로 믿었다.
"아… 이게 진짜 주식으로 돈 버는 거구나."
"빠떼리 아저씨 말이 진짜였어."
나는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라 더 많은 영상을 보게 되었고,
그 영상들은 내 판단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객관적 판단이 아니라 확증편향이었다.
“오를 이유만 찾고 있었던” 시간.
📉 변곡점은 생각보다 조용히 찾아왔다
2023년 9월, 에코프로는 100만 원을 넘겼다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뉴스에서는 “단기 과열 조정”, “건강한 눌림목”이라며 안심시켰고,
빠떼리 아저씨는 영상에서 말했다.
“이건 기회입니다. 더 담아야죠. 누가 파냐고요? 개미가 팝니다.”
그래서 나는 물타기를 했다.
에코프로 주가는 90만 원 → 80만 원 → 70만 원…
그 속도를 따라가며 나는 한 주 한 주를 더 담았다.
하지만 반등은 오지 않았다.
어느새 1억 2천이던 내 계좌는 8,900만 원이 되었고,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던 1억이 깨졌을 때, 나는 처음으로 불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또 한 번의 믿음을 택했다.
**“지금 파는 건 결국 호구짓”**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조정은 버텨야 부자가 된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 2024년, 배터리는 식고… 나는 탔다
2024년 들어 전기차 판매 성장률이 꺾이고,
미국과 유럽의 보조금 축소 정책이 뉴스로 나오기 시작했다.
배터리 업황 둔화, 투자심리 위축, 수출 부진, 실적 하향 조정…
모든 게 눈에 띄게 차갑게 식고 있었지만, 나는 무시했다.
뉴스보다 빠떼리 아저씨의 해석을 더 믿었고,
지표보다 유튜브 댓글을 더 신뢰했다.
그리고 어느 날, 에코프로는 하루에 -18% 급락했다.
포스코퓨처엠도 -12%, 엘앤에프는 -15%, 천보는 -10%
그날 하루 만에 내 계좌는 8,300만 원 → 6,900만 원
나는 그제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지만, 이미 늦었다.
🧟 죽은 줄 알았던 주식은 더 죽을 수 있다
“이쯤이면 반등하겠지.”
“손절하기엔 너무 늦었어.”
“분기 실적만 잘 나오면 다시 오를 거야.”
하지만 현실은 다르게 흘렀다.
- 에코프로는 40만 원 아래로
- 엘앤에프는 반토막
- 포스코퓨처엠은 1년 전 가격으로 회귀
- 천보는 기관 매도 리스트에 오름
나는 점점 더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어떻게 매도해도 손해고, 손해를 인정할 용기는 없었다.
그렇게 계좌는 매일 조용히 썩어갔다.
💀 1억은 4,600만 원이 되었고, 나는 바보가 되었다
2024년 말, 정확히 12월 28일 기준.
내 계좌는 총 평가액 4,638,400원
거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고, 심리적 에너지는 더 많이 사라졌다.
빠떼리 아저씨 영상은 더 이상 보지 않는다.
이제는 ‘알고리즘’이 내게 주식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난다.
나는 아직 종목들을 매도하지 못한 채,
로그인도 하지 않고 계좌를 방치하고 있다.
📘 그리고 지금 – 늦게 배운 교훈은 가장 오래 남는다
나는 이 실패를 통해 여러 가지를 배웠다.
- 주식은 ‘스토리’로 하는 게 아니라 ‘숫자’로 해야 한다는 것
- 유튜브는 정보가 아니라 ‘자극’이라는 것
- 포트폴리오는 종목이 아니라 ‘섹터 분산’이어야 한다는 것
- 그리고 무엇보다, 내 돈에 책임을 지는 건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
그렇다. 나는 2차전지라는 ‘스토리’에 취했고,
‘빠떼리 아저씨’라는 캐릭터에 기대어 책임을 넘겼다.
그 대가로, 나는 1억 중 5,400만 원을 잃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얻은 건
앞으론 절대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주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년 4월 공모주 청약 기업 분석: 투자 포인트와 성장성 완벽 정리 (0) | 2025.03.30 |
---|---|
왜 나만 안 될까 – 양자컴퓨터 주식 폭망기 (1) | 2025.03.27 |
미국 증시 반등 조짐? ‘매그니피센트 7’ 기술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1) | 2025.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