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에서 웃은 우리, 친구들과 떠난 3박 4일
🌿 바람이 다른 도시, 하노이에서 친구들과 웃다
여행이란 참 묘하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던 하루가, 다른 땅에서라면 특별한 기억이 된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 ‘친구’라는 이름이 더해지면, 시간은 더 또렷하고 따뜻하게 남는다.
이번 하노이 여행이 딱 그랬다.
친구들과의 해외여행은 꽤 오랜만이었다. 다들 직장과 일상에 치이다 보면 “언젠가 가자”라는 말만 남기기 십상인데, 그 ‘언젠가’가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 5명의 친구들이 비슷한 시기에 휴가를 맞춰, 하노이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목적지는 단순했다. 따뜻한 날씨, 맛있는 음식, 그리고 웃을 수 있는 곳. 그게 우리가 하노이를 선택한 이유였다.
🛫 하노이 공항에서 만난 첫 공기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마주한 것은 따뜻하고 습한 공기였다. 서울의 봄보다 한층 더 진한 여름의 느낌. 공항 문을 나서며 우릴 반긴 건 오토바이 무리였다. 차보다 오토바이가 많았고, 신호는 무의미해 보였다. 처음엔 그 움직임에 놀라 웃었지만, 금세 그 혼란 속에서도 묘한 질서가 있다는 걸 느꼈다.
“하노이는 살아 있는 도시야.”
한 친구가 말했다. 정말 그랬다. 하노이는 거리마다 살아 숨 쉬고 있었다.
🏨 올드쿼터, 하노이의 심장
숙소는 하노이 구시가지(Old Quarter) 한복판에 있었다. 오래된 건물과 좁은 골목, 어지러운 전깃줄과 낮게 울리는 오토바이 소리. 처음 보는 거리임에도,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오래된 동네 친구를 만난 것처럼.
우리는 짐을 풀자마자 거리로 나섰다. 베트남 길거리 음식의 성지답게, 몇 걸음마다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분짜, 반미, 넴(베트남식 튀김), 그리고 시원한 하노이 맥주. 그 자리에서 먹고 마시며, 우리는 이미 절반쯤 하노이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올드쿼터의 거리는 늘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그 북적임이 이상하게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정겨웠고, 활기찼다. 식당 앞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 하노이의 맛, 거리의 향
둘째 날 아침, 우리는 숙소 근처 로컬 식당에서 **퍼(phở)**를 먹었다. 국물은 맑고 깊었고, 고수 향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와, 이건 진짜다.”
한 친구가 말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쌀국수의 여운을 안고 호안끼엠 호수로 향했다.
**호안끼엠 호수(Hoàn Kiếm Lake)**는 하노이 사람들의 쉼터이자, 여행자들의 필수 방문지다. 호숫가를 따라 걷는 노인들, 사진을 찍는 커플들, 수업을 마친 학생들까지. 모두가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호수 중앙의 **붉은 다리(떡선 다리)**를 건너 응옥선 사원도 둘러봤다. 그리고 그늘진 벤치에 앉아 잠시 말을 줄였다. 바람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 하노이의 골목, 카페, 그리고 우정
오후엔 카페 거리를 돌며 유명한 **에그커피(Cà Phê Trứng)**를 마셨다. 부드러운 달걀 거품과 진한 커피가 어우러져 놀라운 맛이었다. 친구들과 카페 한켠에 앉아 사진을 찍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너 지금 너무 행복해 보여”라고 말하곤 했다.
하노이의 골목은, 그 자체로 여행지였다. 허름해 보이지만 오래된 아름다움을 지닌 벽, 낙서처럼 그려진 벽화들, 이름 모를 식물들이 담벼락을 타고 자라는 풍경. 우리가 서울에서 잊고 살던 여유와 느림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 하롱베이, 자연이 만든 유화
셋째 날, 우리는 하루 일정을 내어 하롱베이(Hạ Long Bay) 투어를 다녀왔다. 하노이에서 왕복 다섯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였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배를 타고 석회암 섬들이 이어진 바다 위를 지나며,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풍경을 바라봤다. 장난을 치던 친구들도 그 순간만큼은 조용해졌다. 눈앞의 풍경은 장관이었다. 수천 개의 섬이 안개처럼 피어올라 바다 위에 떠 있었고, 그 사이를 배가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사진으로는 절대 담을 수 없는 스케일과 고요함. 마음속으로만 담아두고 싶은 풍경이었다.
🌇 마지막 밤, 맥주 거리에서의 웃음
마지막 밤, 우리는 **타히엔 맥주 거리(Bia Hơi Tạ Hiện)**를 찾았다. 가게 앞에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어디서나 음악과 웃음소리가 들렸다. 맥주를 마시며 다시 여행의 이야기를 꺼냈고, 서울로 돌아가면 또 언제 만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이런 여행, 자주 하자.”
“그래,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우리는 서로의 잔을 부딪쳤다. 하노이의 밤은 깊었고, 우리 사이의 온도는 따뜻했다.
✍️ 하노이에서, 우리라는 계절을 걷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 모두가 조용히 창밖을 바라봤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박 4일의 여행. 뭔가 특별한 일은 없었다. 유명한 레스토랑을 예약하지도, 완벽한 코스를 짠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같이 먹고, 걷고, 웃고, 쉰 것뿐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컸다. 함께 했다는 것, 그리고 서로를 다시 알아가는 시간. 그것이 이번 하노이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하노이는 우리에게 이방인이었지만, 그 거리는 어느새 익숙한 골목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추억은 우리 안에 오래 남아, 언젠가 불쑥 다시 꺼내 웃게 해 줄 것이다.
여행은 끝났지만, 기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