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한 다낭·호이안, 가장 따뜻했던 겨울
🌅 햇살처럼 따뜻했던 나날, 가족과 함께한 다낭·호이안 여행기
가족과 함께 떠나는 해외여행은 언제나 특별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얼굴을 마주할 시간도 부족했던 우리가,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같은 바다를 향해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이미 반쯤 성공이었다. 그렇게 지난겨울, 우리는 함께 다낭과 호이안으로 향했다. 따뜻한 바람과 느린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 도착과 설렘, 다낭의 첫인상
비행기는 생각보다 짧은 듯 길었다. 비행 내내 어머니는 창밖을 바라보며 "우리 진짜 가는 거 맞지?"라며 연신 웃으셨고, 아버지는 기내식을 남기지 않고 다 드셨다. 동생은 여행 내내 사진 찍을 생각에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다낭 국제공항에 내리자, 부드럽고 따뜻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한국의 겨울을 뒤로한 우리는, 한껏 얇은 옷차림으로 환복한 후, 호텔로 향했다. 택시 창밖으로 보이는 야자수와 오토바이 행렬, 형형색색의 거리 간판이 낯설고도 흥미로웠다.
숙소는 미케비치 인근의 리조트였다. 테라스 문을 열자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조용히 바다 쪽으로 손을 뻗으시며 "이런 데서 며칠 푹 쉬다 가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이 시간이 우리 가족에게 오랫동안 따뜻한 기억으로 남기를.
🏖 미케비치와 용다리의 낮과 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미케비치를 찾았다. 바다는 투명했고, 해변은 고운 모래로 덮여 있었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조용했고, 파도는 낮게 속삭이듯 밀려왔다. 아버지는 슬리퍼를 벗고 물가로 나가셨고, 어머니는 해변에 앉아 햇볕을 쬐셨다. 동생은 카메라 셔터를 쉬지 않았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나는 괜히 뿌듯했다. 이 여행을 계획한 게 잘한 일임을 실감했다.
점심은 현지 맛집에서 분짜와 반쎄오를 먹었다. 고수 향에 익숙하지 않은 동생이 얼굴을 찌푸리자 아버지는 웃으며 "처음은 다 그런 거야"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이렇게 먹으니 진짜 외국에 온 것 같다”며 즐거워하셨다.
저녁 무렵엔 다낭의 명물인 용다리(Dragon Bridge) 근처를 산책했다. 어두워질수록 다리의 용 형상이 환하게 빛났고, 주말 밤이면 불을 뿜는 퍼포먼스를 한다는 설명에 가족 모두가 눈을 반짝였다. 우리는 사진을 남기고, 다리 아래 강변 벤치에 앉아 맥주 한 잔씩을 나눴다. 저 멀리에서 배가 떠다니고, 불빛은 강물 위에서 일렁였다. 서울의 한강과는 또 다른 정취였다.
🏯 호이안, 시간의 결을 걷다
셋째 날엔 **호이안(Hội An)**으로 향했다. 다낭에서 차로 약 40분. 도시의 번잡함을 지나 한층 조용하고 고풍스러운 거리에 도착하자, 모두의 말수가 줄었다. 노란 벽돌 건물들, 느릿하게 흐르는 투본강, 수많은 전등이 매달린 거리—모든 것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낮의 호이안은 고요하고 따뜻했다. 우리는 유명한 콴콩 사원, 일본교(來遠橋), 작은 갤러리와 공예품 가게들을 천천히 걸으며 둘러봤다. 아버지는 손으로 만든 가죽 지갑을 오래 만지셨고, 어머니는 실크 스카프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셨다. 여행의 진짜 즐거움은 이런 순간들이 아닐까.
저녁이 되자 호이안의 거리는 빛으로 물들었다. 등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고, 강 위에는 소원 등을 띄우는 배들이 지나갔다. 동생이 작은 등불에 소원을 적으며 "우리 가족 다 건강하게, 또 같이 여행하자"고 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어머니는 등을 쓸어주셨다.
저녁은 강가의 레스토랑에서 베트남식 코스를 먹었다. 강바람을 맞으며 먹는 식사는 한 끼의 식사라기보단 하나의 추억이었다.
☕ 다시 다낭으로, 그리고 천천히 돌아보기
호이안을 뒤로하고 다시 다낭으로 돌아온 날, 우리는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시내에 있는 **한시장(Han Market)**을 둘러보고, 현지 커피 전문점에서 베트남 로브스타 커피를 마셨다. 아버지는 커피의 진한 맛에 감탄하셨고, 어머니는 고운 그릇들을 하나하나 살피셨다.
오후에는 호텔 수영장에서 잠시 쉬었다. 동생은 햇볕 아래에서 사진을 정리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잡지를 펼쳐 놓고 물에 발을 담갔다. 아버지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채, 파도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고 계셨다. 바쁜 삶 속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풍경이었다.
저녁에는 마지막을 기념하며 호텔 근처에서 씨푸드 뷔페를 예약했다. 모두가 잔을 들며 짧게 건배를 했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웃음은 더 짙었고, 마음은 더 가까워졌다.
✍️ 함께였기에 빛났던 시간
다낭과 호이안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따뜻한 공기, 낯선 거리, 새로운 음식. 하지만 이 여행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그곳에서 함께 웃고, 걷고, 바라봤던 가족이었다.
이 여행을 통해 나는 부모님의 젊은 시절을, 동생의 사려 깊은 면을, 그리고 우리의 소중함을 다시금 확인했다.
여행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다시 연결하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다.
“다음엔 할머니도 같이 가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과 함께 걷는 여행, 그 자체로 우리는 이미 축복받은 여행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