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속 여름, 오키나와에서 너와 나
겨울이 오기 전, 우리는 잠시 따뜻한 바다로 도망치기로 했다. 눈 대신 햇살이 쏟아지고, 두꺼운 패딩 대신 얇은 셔츠로도 충분한 남쪽 섬, 오키나와. 12월 중순의 차가운 서울을 뒤로하고, 우리는 단둘이 떠났다. 손에는 여권과 티켓, 그리고 아직 비워진 여행의 페이지가 들려 있었다.
비행기에서 창밖을 내려다보니 점점 짙은 파란색으로 물드는 바다가 펼쳐졌다. 구름은 더 가벼워졌고, 햇빛은 더 선명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겨울 속 여름의 조각으로 들어갔다.
🛬 도착과 동시에 느껴진 여유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느낀 건 공기였다.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살짝 습기를 머금은 공기. 코끝이 시릴 틈 없이 감싸 안는 바람에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마치 여름에 도착한 것 같은 착각, 그것이 이 여행의 시작이었다.
공항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하는 길, 창밖으로는 푸르른 야자수가 줄지어 있었다. 겨울임에도 곳곳에는 형형색색의 꽃이 피어 있었고, 길가에는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빠르게 흐르는 도시의 시간과는 다른, 조용한 호흡이 이곳의 일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곧 알게 되었다.
🏖 첫날, 에메랄드 바다를 보다
숙소에 짐을 풀고, 첫 목적지는 차탄 아메리칸 빌리지였다. 바다를 품은 작은 도시 같은 공간. 미국 문화의 흔적과 일본의 정갈함이 섞인 그곳에서, 우리는 둘 다 관광객이자 산책자가 되었다.
해질 무렵, 해안가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마주친 바다. 눈앞에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는 우리가 그려온 어떤 엽서보다도 아름다웠다. 수평선 위로 해가 천천히 내려오고, 노을이 물처럼 퍼졌다. 그녀는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말은 없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멈춘 듯했다. 함께 바라보는 풍경 하나로도 충분한 날이 있다면, 아마 그런 날이었을 것이다.
🍱 현지 음식과 우리의 식탁
둘째 날 아침, 우리는 시장에서 산 신선한 과일과 오니기리로 아침을 시작했다. 그녀는 생파인애플을 처음 먹어본다며 기뻐했고, 나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여행지의 아침은 낯설기에 더욱 특별하다.
점심은 현지인들로 가득 찬 작은 식당에서 먹었다. 메뉴는 오키나와 소바. 돼지고기와 가쓰오부시 국물이 어우러진 그 맛은 예상보다 훨씬 담백하고 깊었다. 따뜻한 국물이 속을 채우자, 마음까지 포근해졌다. 그녀는 "겨울인데 이렇게 따뜻한 게 너무 신기하다"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여기선 겨울도 여름이니까"라고 대답했다.
🐠 츄라우미 수족관에서의 오후
오키나와에서 꼭 가고 싶었던 곳 중 하나는 츄라우미 수족관이었다.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그곳은, 바다를 품은 또 다른 세계였다. 거대한 수조 안을 유영하는 고래상어와 가오리들, 형형색색의 산호와 물고기들은 마치 우리가 물속으로 들어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유리 너머의 세계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 옆에서 나는,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바라보는 것을 함께 바라봐주는 것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우리는 수족관 근처에서 천천히 걷다가, 나무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하늘은 주황빛으로 물들었고, 바다는 거울처럼 그 빛을 품었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겨울바다의 공기는 선선했지만, 그 손의 온기는 참 따뜻했다.
🌙 나하의 밤거리, 그리고 우리
여행의 마지막 밤, 우리는 나하 시내의 국제거리(코쿠사이도리)를 걸었다. 밤이 되자 거리는 낮보다 더 활기를 띠었고, 네온사인 사이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흘렀다. 기념품 가게에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닮은 작은 시사(오키나와의 전통 수호신) 인형을 하나씩 골랐다. 그녀는 "이건 나고, 이건 너야"라며 웃었다. 나는 장난스럽게 "난 이쪽이 더 귀엽다"고 말했고, 그녀는 살짝 뺨을 부딪치듯 웃었다.
작은 바에서 마지막 맥주를 마시며, 우리는 사진을 넘겨보았다. 하루하루가 모두 다른 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그 속에는 우리의 표정이 가득했다. 여행은 결국 함께한 사람을 더 깊이 알게 해주는 과정이라는 것을 다시 느꼈다.
밤이 깊어지고, 우리는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조용히 걸었다. 말은 없었지만, 가로등 아래 나란히 드리워진 그림자 속에서 둘의 마음은 나란히 있었다.
✍️ 겨울의 가장 따뜻한 기억
서울로 돌아온 뒤, 눈이 내렸다. 우리는 창밖의 눈을 바라보며 동시에 말했다.
“오키나와, 또 가고 싶다.”
겨울 속의 여름. 오키나와는 우리에게 단순한 휴양지가 아닌, 계절의 틈을 열어준 시간이었다. 따뜻한 바다와 부드러운 공기, 낯선 음식과 익숙한 손, 그리고 함께 보낸 하루하루가 하나의 계절처럼 가슴에 남았다.
지금도 가끔, 바람이 불 때면 그 바다의 냄새가 떠오른다. 아마도 그곳은 우리가 가장 따뜻했던 겨울을 남긴 곳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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